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밋 롬니 (문단 편집) === 공화당 대선 후보 출마 === 2008년에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다. 막강한 자본력으로 1월 [[아이오와]] 코커스에서 [[마이크 허커비]][* 남부 근본주의 목사지만 아칸소 출신에 자수성가 했고, 대중 친화력이 뛰어나 "공화당판 클린턴" 이란 평가를 들었다. 심지어 이 둘은 모두 [[아칸소]] 주지사를 지낸 경력이 있다. 하지만 중도파는 아니었고, 결국 ~~길리어드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~~"성경에 따른 [[헌법]] 개정"을 주장했다가 지지도가 급락, 사퇴하고 이후 정계에서 은퇴했다.]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준다. 이후 [[와이오밍]] 코커스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, 중요한 [[뉴햄프셔]] 예비선거에서도 [[존 매케인]]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. 그러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4위로 밀려났고, 특히 2월 5일 수퍼 화요일에서 예비 선거 결과가 부진하여 공화당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존 매케인 지지 선언을 하고 경선을 중도 하차했다. 이후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로 예견되기도 하였으나 이 자리는 여성 후보인 [[세라 페일린]]이 꿰차면서 부통령의 자리 역시 날아갔다. 이후 오바마 정권이 시작되면서부터 포기하지 않고 와신상담하며 차기 대선주자로써의 입지를 다져갔고, 2011년 6월 2일에 다시 한번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. [[2011년]] 후반에 공화당 대표 대통령 후보 선거중에는 계속 2위를 지켜왔다. 어쨌든 [[릭 샌토럼]], [[뉴트 깅리치|뉴트 깅그리치]] 등 다른 공화당 후보와 비교했을 때 가장 온건한 인물이기 때문에, 존 헌츠먼이 광탈 일찍 떨어지고 [[론 폴]][* [[의사]] 출신 비주류 의원이자 [[자유지상주의]]자로 [[이라크 전쟁]]에 반대하며 존재감을 들어냈다. "돈 없는 인간들에게 정부가 의료보험을 지원해 줄 필요 없다." 등 여러 과격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나 미국의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. 나이가 많은게 흠(1935년생). 그의 아들 [[랜드 폴]] 또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으로 대권 잠룡으로 불린다.]이 곧 캠페인을 중지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공화당의 중도 우파들의 투표를 모두 흡수하였다. 그리고 결국 2012년 5월 29일 텍사스에서 58명의 대의원 지지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과반수의 대의원 지지를 확보하게 되어 밋 롬니가 제45대 미국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.[* 지난 대선에서 3월 초에 이미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매케인에 비하면 아주 늦은 셈이다.]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시작 전부터 후보 1순위로 강력하게 꼽혔으나 생각보다 고전하면서 위에 있는 Why don't they like me라는 헤드라인까지 나오기도 했다. 그럴만도 한게 밋 롬니가 승리하기전에 잠시나마 여론조사 1위를 한 후보는 [[도널드 트럼프]], 미셸 바크먼, [[허먼 케인]], [[뉴트 깅리치]], 그리고 마지막의 [[릭 샌토럼]]까지 무려 '''5명이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